01 시 ‘듣기’ 모임
2월의 시 ‘듣기’ 모임에는 ‘낭독 당번’이 있습니다. 첫 모임인 2월 4일엔 운영자가 낭독 당번을 맡지만, 11일, 18일, 25일엔 참여자들이 맡습니다.
모임 운영자는 함께 읽을 텍스트를 낭독 당번에게만 미리 공유합니다. 낭독 당번은 모임에 참석하기 전에 여러 번 소리 내서 혼자 읽어보고 어느 지점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편안하게 들리는지 연습한 후, 낭독을 녹음해 옵니다.
시를 듣는다고 할 때, 시의 내용이나 메시지를 듣는 일 못지않게 읽는 ‘소리’를 듣는 일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모임에서 낭독 당번이 준비한 녹음본을 함께 듣습니다.
낭독을 들으면서 ‘잃기’와 ‘지키기’를 연습해봅니다. 우리는 읽기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이나 배움을 얻게 되리라고 가정하기 쉽지만, 시 읽기에서는 듣는 과정에서 우선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모여서 시를 읽으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연습부터 시작합니다.
1~2회차 모임에서는 텍스트들을 중점적으로 들으면서 각자 무엇을 잃었는지 대화를 나눕니다. ‘잃기’ 연습에 익숙해지면 3~4회차 모임에서는 ‘지키기’ 연습을 시작합니다. 시가 직접 말하지 않음으로써 지키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추하는 연습입니다. 잃기 연습 때 사용된 텍스트들을 다시 사용할 수도 있고, 새로운 텍스트들이 추가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든 더 많이 배우고 무섭게 생산해내고 정신없이 소비하도록 만드는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더 잘 들리게 하기 위해 낭독을 연습하고 녹음하고 들려주는 일, 다른 사람이 녹음해 온 목소리를 들으면서 부주의하게 쓸어 담아온 것들을 적극적으로 잃어버리는 일, 그 과정에서 새로이 발견하고 지켜내는 연습을 해봅니다.
*
시 읽기의 세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시가 너무 어려워서 뭘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쪽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시인을 제일 좋아하세요?” 물은 후 돌아오는 대답을 듣곤 모든 걸 다 알았다는 듯 “아, 그런 취향이시구나” 하고선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는 쪽. 시를 모른다고 생각하는 쪽과 제법 안다고 생각하는 쪽. 두 집단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어느 쪽이든 시를 ‘앎’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에서는 같아 보입니다. 시 창작 수업과 시 독서모임은 이미 많고, 굳이 제가 더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만일 시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새로이 모인다면 그것은 시 '듣기' 모임이면 좋겠습니다. 시 읽기에 익숙한 사람들 혹은 한 번도 시를 읽어본 적 없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시소를 타듯이 오르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았습니다. 시소는 혼자 탈 수 없지요.
이번의 ‘시 듣기’ 모임에서는 시에 대해 대화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귀 기울여 듣느라 조용한 시간도 많을 거예요. 열띤 토론이나 (전문가로서의 강사가) 쉴 새 없이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설명하는 시간으로 꽉 차지 않을 거예요. 나만의 관점으로 그럴듯하게 읽어내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시를 듣는 법을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피로감보다는 고요한 활력이 차오르면 좋겠습니다.
비평가 은정이 진행합니다.
시에 관한 생각들을 평론의 형식으로 오래 써왔습니다. 이제는 혼자서 독창적으로 읽으려 노력하기보다 모임을 통해 시를 ‘듣는’ 과정에서 가능한 연결을 이끌어내는 일을 해보려고 합니다.
▷ 2월의 매주 토요일(4일, 11일, 18일, 25일), 오후 12시부터 1시 40분까지 100분, 홍대입구역 인근의 PLATFORM P(서울 마포구 신촌로2길 19) 2층에서 진행됩니다. 모임 참여비는 16만원, 두 개 이상의 모임에 참여하시면 한 모임당 15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