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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shop

​시를 읽는 자세

봄로야_ 망원동에 위치한 전시 공간 ‘별관’에서 종료한 전시를 이용하여, 시를 쓰는 창작자와 해당 전시를 열었던 시각 예술가와의 접촉을 유도했다고 알고 있어요. 창작자들이 주체적으로 비평적 대화를 나누기 위한장치를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시도였는지 궁금해요. 

사각(은정): 별관 전시공간(서울시 마포구 망원로74 2층)은 현재 두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워크숍 진행 당시 한쪽 전시실은 이우성 작가의 작품으로 꽉 차 있었고 다른 전시실은 텅 빈 채 에어 빈백만 놓아 공간의 대비를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만들었어요. 참여자는 빈백에 누워 대화를 나누었고요. 시가 가장 많이 읽히는 장소인 서점에는 편안하게 누울 수 있는 여분의 공간이 드물어요. 그래서 시를 읽는 장소 자체를 변화 시켜 보았습니다.
 
망원동은 여러 독립서점과 창비 출판사의 문화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이미 문학을 읽고 쓰는 이들이 많이 찾는 장소입니다. 제 클래스는 일반적으로 서점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을 전시 공간으로 옮김으로써,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전시를 보거나 전시를 하는 작가들의 이동 동선과 겹쳐지고 교차하도록 유도되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함께 예술을 하고 있으나 장르별로 움직이는 동선이 한정된 채로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참여자들 대부분이 망원동에 이런 전시 공간이 있는 줄 몰랐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또한, 평소 어떤 전시들이 열리는지 등의 질문과 답을 오가며, 망원동이라는 지역이 문학을 하는 이들에게 서점뿐 만 아니라 전시 공간도 함께 존재하는 장소라는 인식을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언제나 자유와 새로움을 말하면서도 늘 같은 장소와 태도로 소비되고 있지 않은지 질문하고 싶었어요.


봄로야_ 문학이 소비되는 장소에서 그렇지 않은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만으로는 기획자의 비평적 개입 혹은 행위로 변환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종료한 전시를 이 프로젝트를 위해 잠시 지연시키고, 다음 전시 설치 사이의 공백을 확보하여 스페셜 게스트로 해당 전시를 열었던 작가를 익명의 이름으로 초대한 장치가 의도의 깊이를 더한 듯합니다. 참여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조금 더 이야기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각(은정)_ 워크숍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전, 이우성 작가의 전시 공간을 먼저 관람한 후에 제 클래스가 진행될 수 있도록 세팅된 옆 전시실로 동선을 연결했습니다. 클래스 참가자는 워크숍에 참여했다가 우연히 마주치게 된 작품을 관람하고 감상하게 됩니다. 그런데 워크숍에 참여한 스페셜 게스트가 해당 전시를 열었던 이우성 작가였어요. 그러나 제 워크숍에선 익명으로 참여했고 이는 제게 일종의 퍼포먼스 장치였어요. 참가자는 자신이 작품의 감상을 말하는 동안 그 감상을 작가가 직접 듣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로 대화를 나누게 됐죠.

이후 참여자들이 가져온 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때 이 시가 누구의 시인지 어디에 언제 발표된 것인지 해당 정보를 모두 지운 상태로 시를 읽기로 합의되어 있었으므로,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스페셜 게스트인 이우성 작가 역시 참여자가 가지고 온 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약 두 시간 동안 시에 대한 이야기를 열띠게 나눈 후, 오늘 대화에 대한 후기를 남기는 시점에 참여자 중 한 명이 옆 전시실의 작품을 그린 작가라는 사실을 밝히자 참여자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작가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 상태로 작품에 대한 감상을 편안하게 나눴어요. 워크숍이 끝나고서야 옆 전시실의 작가가 워크숍의 스페셜 게스트라는 점을 밝히자 참여자들이 놀랐어요. 저는 이 ‘놀람’의 감정을 ‘비평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작품을 비평으로 발화할 때, 이를 듣는 사람이 작가인가 아닌가에 따라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논의해볼 수 있었죠. 스페셜 게스트라는 명칭은 이중적인 레이어를 갖게 됩니다. 바로 옆 공간에서는 작가이지만 '시를 읽는 자세' 워크숍에선 시의 향유자가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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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_ 안부, 21.09.09 워크숍 현장 

봄로야_ 그 순간이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누웠던 몸에 잠시 긴장감이 생겼을 것도 같고요. 놀람의 감정에 그치지 않고 이를 비평적 태도로 이어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끌어나간 점이 중요해 보입니다.

사각(은정)_ 사실 스페셜 게스트에 대한 아이디어는 팬데믹 시대의 예술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 추가된 기획이에요. 행사를 위해 어떤 물품을 하나라도 더 사게 되면 이 소비가 결국은 우리가 많은 인원으로 모일 수 없는 상황에 오히려 가담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모순 지점이 제게는 고민이었어요.

이우성 작가의 전시 철거 일정을 2주 연장하고 제 프로그램과 겹치는 시간대를 확보하며 이전 전시의 작가를 제 프로그램의 참여자로 초대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제가 전시를 보거나 하는 이들의 동선과 문학을 읽고 쓰는 이들의 동선을 뒤섞어서 일종의 교차점을 구성하는 방식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팬데믹이라고 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예술이 생산성을 최대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에 주어져 있던 자원들을 충분히 활용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옆 공간의 전시 작가가 익명으로 클래스에 참여해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감상 후기를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듣게 되고, 또 자신도 타인의 시를 향유하고 자유롭게 말하는 경험을 통해, 작가 앞에서 하는 말과 작가가 없을 때 하는 말이 다름을 알았어요. 작품이 맥락과 상황에 따라서 입체적으로 읽히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시 읽는 사람들이 가지 않을 법한 공간으로 참여를 유도한 게 저에게는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봄로야_ 은정 님의 프로젝트는 시를 쓰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 참여했어요. 참여자의 정체성 범위를 다르게 적용하고 그에 따라 면밀하게 기획해서 실행했기에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이러한 비평적 행위에 대해 은정 님에게 되묻자면 최근의 자신을 문학 평론가가 아닌 비평가로 칭하셨죠.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사각(은정)_ 비평을 글쓰기로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장르의 완성된 글을 '평문'이라고 한다면 비평적 행위는 이를 포함하는 상위개념으로 여기게 됐어요. 즉 제게 비평이란 글쓰기로만 한정되지 않는 훨씬 더 큰 개념으로, 주어진 의제에 관해 거리를 두고 낯설게 보고 이를 많은 이들에게 다르게 제시함으로써 지금 필요한 질문을 공유하는 일 같아요. 질문을 공유하는 방식 중 글쓰기 형식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선택하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 일정한 의도를 갖고 개입하는 특정 태도와 행동 모두를 포괄합니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수로 모여서 빈백에 누워 시를 같이 읽자고 제안하거나 같이 읽는 사람 중에 옆 전시실에서 전시 중인 작가가 모른 척 같이 참여한다거나 하는 모든 기획이 제게는 비평적 작업인 듯해요.

* 위 인터뷰는 봄로야 작가와 희음 작가, 함께 나눈 대화를 워크숍을 주제로 재편집하였습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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