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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거점 기록

한 평의 장소

2017년부터 공공기관들이 진행하는 사업에서 기획자, 편집위원, 심사위원, 모니터링 평가위원 등 여러 포지션으로 다양하게 일해 왔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의문이 들었다. 공공기관의 조직 체계가 가진 관료적 특성이 문화예술이 지향하는 바와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것은 아닐까? 흔히 예술이 갖는 특수성을 결과가 아닌 과정 중심, 성과보다는 경험 중심으로 꼽지만, 이러한 특수성이 문화예술 정책 내의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발휘될 수 있으려면 이를 주관하는 기관 역시 그에 맞는 조직 문화와 체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관료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공공기관이 문화예술이 갖는 특수성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문화예술 생태계에서 공공기관이 개입하는 영역에서 의뢰받아 여러 포지션으로 일하면서도 그 일들로부터 항상 어느 정도의 비판적 거리감을 유지해왔던 이유이다. 


처음 제안 받았던 본 프로젝트의 예비 이름은 “현장 상호 교류 〈꿈다락 심층취재: 그들의 흔적〉추진 계획(안)”이었다.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사업은 주5일 수업이 시행된 2012년부터 시작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올해로 꼭 십년을 맞이한 이 사업은 그동안 문체부 예산을 중심으로 각 시·도 17개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들이 국고보조금과 지방비를 매칭하여 지역별로 진행되어 왔다. 나는 17개 센터들 중에서 경기센터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다. 참여 단체들 사이의 네트워크 구축 뿐 아니라 현장의 예술교육자들에게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수집하여 차년도 사업 개선에 반영할 지점들에 대한 적극적인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런데 경기센터가 제안한 협업에 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남아있었다. ‘현장 상호 교류’라는 수식어를 붙인 후 협업에 응한다고 한들, 그것이 조직문화의 변화와 나란히 고려되지 않는다면 기존 사업이 변화할 수 있는 범위는 미리 제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바꾸려는 노력조차 어쩔 수 없이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이 사업의 결과물로 제작될 책자가 총 세 개의 부로 나눠서 구성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1부는 스무 단체들과 나눈 대화들의 요약, 2부는 이 대화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추출될 수 있는 사업의 문제점을 경기센터에 전달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약속 받는 것, 3부는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을 학술적 논문으로 정리하는 것. 

 

그러나 모든 대화를 정리하고 경기센터에 결과보고를 하러 갔을 때, 이 사업을 함께 구상하고 완성하기로 한 담당자분들이 모두 다른 분들로 바뀌어 있었다. 이미 활성화된 지원사업도 담당자가 바뀌면 일련의 업데이트 시간이 필요한데, 하물며 갑작스레 맡게 된 사업의 개요를 완전히 파악하기도 전에 그 사업의 문제점과 개선 여부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 했다. 따라서 결과 보고회는 짐작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나는 결과 보고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고민에 빠졌다. 책임자가 이토록 쉽게 교체되는 구조는 담당자가 자신이 맡은 사업에 대한 전문성을 기르기 힘들 뿐 아니라 책임감 역시 개인의 역량에 맡겨진다. 

 

사실상 이 문제는 경기센터만의 문제가 아니며,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쉬이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문제를 가진 조직과 어떻게 장기적인 목적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함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을 처음 기획할 때에는 김진희 선생님이 총괄 책임자였지만,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는 황연정 선생님으로 책임자가 바뀌었다. 실무자 역시 바뀌었다. 그리고 2022년 1월이 되면 최종적으로 두 선생님 모두 경기센터의 소속이 아니다. 


나는 이러한 인사이동 과정 역시 모두 기록의 대상으로 삼기로 했다. 여전히 공공기관이 구성하는 현장의 문제는 공공기관의 조직 체계의 문제와 밀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직 체계의 문제는 운영하는 사업에 영향을 미치고, 사업은 참여 예술가/교육자에게 영향을 주며, 최종적으로 예술교육 현장의 중요한 구성원인 어린이와 청소년까지 모두 연결되어 영향을 끼친다. 게다가 공공기관의 조직 체계 문제 역시 우리 사회의 정책 결정 시스템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으리라.이렇게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사업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쳇바퀴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이 문제의 리스크는 결정권한이 가장 적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짊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건 하에서 나는 이 작은 책자 한권을 어떻게 만들어야할까? 책임자가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써내려간 기존 기획서 그대로 실행하고 결과 보고서를 깔끔히 제출하면 사실상 행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나는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선생님들께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변화를 요구하겠다고 약속했고, 그 약속을 함께 이행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다른 분들로 바뀌었다. 사업은 인수인계될 수 있지만 약속은 어떤가? 약속도 인수인계가 될 수 있는가? 그럼에도 예술교육자 선생님들과 한 약속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며, 현 상황에서 그 약속을 어떤 방식으로 지킬 수 있는지 고민하던 도중 예전에 읽었던 책의 다음 대목이 떠올랐다.
 

학생들에게 본인을 계속 지탱해 줄 장소를 찾기 시작해야 할 나이라고 이야기했다. 장소가 사람보다 더 믿을 만하고, 가끔은 사람보다 더 오래 관계가 유지되기도 한다고 말이다. (…) 나는 친구나 스승을 발견하기 전에 책과 장소를 먼저 발견했고, 사람이 주는 것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것들은 내게 많은 것을 주었다.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반비, 2016) 중에서)


2021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시대에 다시 떠올린 이 대목은 2016년에 번역된 신간으로 읽었을 때와는 아주 다르게 와 닿았다. 가령 이런 문장. “장소가 사람보다 더 믿을 만하고, 가끔은 사람보다 더 오래 관계가 유지되기도 한다고 말이다.” 비대면의 시대, 장소성을 이토록 강하게 경험했던 적이 있었던가? 어디에 얼마나 모이는가를 이렇게 스스로 신경 쓰면서  살아야했던 시간이 있었던가? 이 프로젝트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일 스무 단체가 동일한 날짜와 장소에 모일 수 있었다면 효율성을 고려해 하루의 행사로 간단히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열 번의 만남이 구성되었고, 두 단체씩 매칭 되었다. 이 만남을 위해 제한된 인원들이 인터뷰 장소에 모이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두 시간 동안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눈 후 곧 헤어졌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으나 코와 입을 마스크로 가린 채 대화해야 했던 이 만남의 특수성을 어떻게 기록해야 할까? 내겐 스무 시간의 인터뷰 녹음 기록이 남아있었다.

 

솔닛은 “친구나 스승을 발견하기 전에 책과 장소를 먼저 발견했”다고 쓴다. 이 문장에서 책과 장소는 서로 다른 대상이지만, 쉽게 모일 수 없는 팬데믹 시대에서는 책이야말로 우리의 새로운 장소가 되어줄 지도 모른다. 책이 만들어내는 장소는 면적의 제한도, 인원의 제한도 없으며, 발열 체크 혹은 이 장소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개인정보조차 필요하지 않다. 이 작은 책자를 한 평의 작은 멸균실, 무한히 독자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가장 작은 규모의 광장으로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고양, 용인, 수원, 안산, 파주, 수원 등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때로는 기차를, 때로는 빨간 버스를, 때로는 세 시간 씩 걸려 지하철을 타고 움직였다. 이 동선은 때로 수원에서 고양시까지, 안산에서 양주까지, 마치 케익을 자르듯 서울을 동서남북으로 성큼성큼 가로질렀다. 문학평론가 시절에 작가들을 인터뷰를 진행할 때는 시간적인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녹음 파일의 ‘길이’를 중심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무렵, 녹음 파일 목록을 살펴보니 위치 추적 기능으로 인해 녹음 파일의 제목이 인터뷰가 진행된 지역명으로 되어 있었다. 즉 경기도라는 동일한 행정구역으로 묶이지만 사실상 물리적으로는 여기저기 멀리 흩어져 있는 장소성이야말로 이 프로젝트의 중요한 특성이다. 


드문드문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제각기 다른 장소/시간/언어를 가지고 대화를 나눴던 곳들은 모두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는데 있어 현장의 언어를 공유하고 지금 우리가 처한 문제를 진단하는 임시 거점이 되어주었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거점(據點)’이란 어떤 활동의 근거가 되는 중요한 지점을 뜻한다. 이 거점들을 시각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면 목차는 흩뿌려진 점들, 일종의 ‘지도-기록’이 될 것이다. 어린 시절, 숫자가 매겨진 점들을 순서대로 선으로 이으면 꽃이나 토끼가 나타나곤 했다. 이 아이디어를 모티프로 하여 경기지역의 문화예술 교육자들이 함께 만나 이야기를 나눴던 시간들을 지도로 만들어 겹쳐놓고자 한다. 

 

인터뷰의 내용은 녹음 파일이 들려주는 그대로 옮겨 적지 않았다. 비록 스무 단체는 코로나로 인해 한 번에 모일 수 없었으나 이 책을 통해 열 개의 거점들은 페이지들로 나란히 포개어진다. 인터뷰의 내용 역시 이 아이디어를 따라 하나의 거점이 공개될 때마다 그 거점에서 나눈 대화의 중요한 단어들만을 남기는 방식으로 시각화했다. 인터뷰와 인터뷰 사이, 단체들을 소개하는 단어들이 별처럼 흩뿌려져 있도록 구성하여 대화들 역시 긴밀한 연관성보다는 제 각기의 입장과 특수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구성했다. 

 

이 책자는 기본적으로는 ‘꿈다락’이라고 하는 특정 사업의 개선지점을 논의하는 담론을 이끌어내는 자료이지만, 경기 지역의 문화예술교육 지형도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자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 한 영화평론가는 작금의 예술을 두고 스스로 생존할 능력이 없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나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 사업에 의해 겨우 ‘연명’해가는 돌봄의 대상이라고 일갈한 적 있다. 
 

그러나 내가 경기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만났던 예술교육 현장은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예술교육현장에서 예술가들로부터 얼마나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돌봄을 받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이 인터뷰들을 통해 예술이 전시공간이나 무대 위에 이미 완성된 작품으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어린이와 청소년, 10대 시민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사건이기도 하다는 것을 배웠다. 어쩌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모두에게 권장되는 팬데믹 시대의 예술에서 ‘관계맺기’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정당화되는 고립으로부터 우리가 어떻게 다르게 연결될 것인가를 매번 다시 고민하고 발생시켜야 할 사건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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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번역되어 한국사회에 소개된 더 케어 컬렉티브의 『돌봄선언』에서 ‘돌봄’이란 “모든 규모의 생명체에 활성화되어 있고 필요한 것”으로 정의된다는 점에서 ‘평등’의 개념과 필연적으로 맞물린다. 돌봄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가장 흔하게 떠올리는 양육과 간호 행위를 살펴보면 돌봄을 제공하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에게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그 돌봄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돌봄의 지속은 그에 참여하는 모든 구성원에 대한 적절한 지원과 관심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평등을 기반으로 교육되고 공유되고 사용”되어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자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할 때, 현재 운영 중인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와 교육 현장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기를 원했다. 내가 이들을 직접 찾아가서 만나는 것이 단순히 어느 기관에서 운영 중인 사업에 대한 이야기에만 국한된다면 인터뷰에 참여한 선생님들의 목소리가 오로지 사업의 참여자로서만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들은 근본적으로 예술가이며 동시에 문화예술교육자이다. 한국사회의 문화예술 생태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구성원인 셈이다. 따라서 올해 진행한 사업에 대한 디테일한 이야기에서 국한되지 않고 이들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어떤 질문이 필요할지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다소 엉뚱한 키워드들이 동원되었는데, 휴식, 쉼, 놀이, 창의성 같은 것들이다. 이 키워드가 포함된 질문 앞에서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가장 반가웠던 순간은 질문이 던져진 후 잠시 공간을 조용히 채우던 침묵 혹은 고요이다. 우리가 쉽게 묻고 쉽게 답할 때, 그 대화는 ‘앎’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나누는 것은 정보의 교류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온라인에 남기는 수많은 기록들이 데이터로 활용되어 알고리즘을 만들 때 적극 활용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면, 직접 만나서 나누는 대화, 그리고 책으로 인쇄되어 남는 대화엔 쉽게 데이터로 전환되기 어려운 일종의 침묵과 망설임, 머뭇거림의 상태가 함께 기록되길 바랐다. 그런 이유로 인터뷰 공개를 원하지 않은 단체의 경우, 이 책자에서 완전히 덜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말하는 순간을 일종의 ‘음소거’하는 형태로 여백을 남겼다. 


예술교육자들은 자신의 프로그램이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명확하고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을 뿐 아니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과도 창의적인 관계를 맺고 이를 통해 그들을 어느 누구보다 정성껏 돌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예술가로서는 향유-시민들을, 교육자로서는 어린이와 10대 시민들을 돌보는 이들은 누가 돌보는가? 나는 이들에게 지속적이고도 적절한 돌봄이 제공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긴급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각자 어떤 환경에 놓여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맥락에서 휴식, 쉼, 놀이, 창의성 같은 다소 엉뚱한 키워드들이 소환되었다. 열 개의 인터뷰가 소개된 이후에 배치된 ‘감각의 인프라’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마치 스무 단체가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눈 것처럼 재구성되었다. 처음 만난 사람의 엉뚱한 질문 앞에서도 기꺼이 같이 고민하고 대화를 나눠주신 스무 단체의 선생님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또한 급하게 사업을 인수인계 받아 정황을 파악하기도 힘든 조건에서 어려운 질문을 마다하지 않고 서면 인터뷰를 작성해주신 경기센터 황연정 선생님, 한번이라도 더 인터뷰의 현장에 직접 참석하려고 애쓰셨던 박한나 선생님의 마음 역시 소중하게 기억하려 한다. 이 책자를 통해 흩어진 우리들 뿐 아니라 문화예술 교육 및 지금의 예술현장에 관심을 가진 다양한 독자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21년 12월 7일
비평전문 사각출판
장은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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